법문

【 경허스님 참선곡 】

홀연히 생각하니 도무지 꿈속일 뿐이로다.

만고(萬古)의 영웅호걸도 북망산 무덤이라.

부귀와 빼어난 문장도 다 쓸데없으니

그 누구라서 황천의 객 신세를 면할쏜가?

오호라! 나의 몸이 풀잎 끝에 이슬이요, 바람 속에 등불이라.

삼계의 큰 스승이신 부처님이 정녕(丁寧)히 이르시대,

마음깨쳐 성불하여 생사윤회(生死輪迴)를 영원히 끊고,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저 국토에 

상락아정(常樂我淨) 무위(無爲) 도(道)를 

사람마다 다하기를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으로 전하였음이라. 

사람되어 닦지 못하면 다시 공부하기 어려우니

어서 나도 닦아보세.

닦는 길을 말하자면 허다히 많지만

그 대강을 간추려 적어보세. 

앉고 서고 보고 듣고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하고

이렇듯이 언제 어디서나 분명히 지각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몸뚱이는 송장이요, 

망상과 번뇌가 본디 공(空)하고

천진면목(天眞面目) 나의 부처 

보고 듣고 앉고 서고

잠자고 일하고 눈 한 번 깜짝할 째, 

천리만리 다녀오고 

허다한 신통한 묘용(妙用) 

분명한 나의 마음 어떻게 생겼는고?

의심하고 의심하되,

고양이기 쥐 잡듯이 

주린 사람이 밥 찾듯이

목마를 때 물 찾듯이

늙은 과부 외아들 잃은 뒤에 자식 생각 간절하듯이 

생각생각 잊지말고 깊이 궁구하되,

일념(一念)이 만념(萬念)되게 하여,

먹고 자는 것을 잊을 지경이면 

대오(大悟)가 가깝도다!

문득 깨달으면 본래 생긴 나의 부처

천진면목(天眞面目)이 절묘(絶妙)하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아니며 석가여래(釋迦如來)가 이 아닌가?

젊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본래 생긴 자기 참된 모습

하늘과 땅을 덮음이 이러하고

열반(涅槃)의 참된 즐거움이 가히 없다. 

지옥과 천당이 본디 공(空)하고

생사윤회(生死輪迴)가 본디 없다.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요연(了然)히 인가(認可)맞아

다시 의심 없앤 뒤에 

세상만사 잊어버리고 

인연(因緣)따라 자유롭게 지내가되

빈 배 같이 떠놀면서 

인연(因緣) 있는 중생 제도하면

부처님 은혜 갚음이 이 아니겠는가?

일체(一切) 계행(戒行)을 지켜가면 

천상 인간 복수(福壽)하고

큰 원력(願力)을 일으켜서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동체대비(同體大悲) 마음먹어 

빈병걸인(貧病乞人) 괄시 말고

온 색신(色身) 생각하되 거품같이 관하고 

바깥으로 역순경계(逆順境界) 

부동(不動)한 이 마음을 태산같이 써나가세.

허튼소리 우수개로 이날 저 날 다 보내고

늙는 것을 망각하니 무슨 공부하여 볼까?

죽을 째 고통 가운데 후회한들 무엇하리?

사지백절(四肢百節) 오려내고

머릿골을 쪼개는 듯 

오장육부 타는 중에 앞길이 캄캄하다. 

한심 참혹 내 노릇이

이럴 줄을 누가 알았을꼬?

저 지옥과 저 축생에 

나의 신세 참혹하다. 

백천만겁을 다 놓쳐버려

다시 사람 몸 입음이 망연하다. 

참선 잘한 저 도인은 

서서 죽고 앉지도 않고 허물을 벗으며

오래 살고 곧 죽기를 마음대로 자제(自制)하며

항하(恒河)의 모래만큼이나 

무수한 신통묘용(神通妙用)을 마음대로 즐기며 오가니

아무쪼록 이 세상에서 눈코를 쥐어뜯으며 

부지런히 하여보세!

오늘내일 보내다 죽을 날에 이르니

푸줏간 가는 소 마냥 

그 발걸음 한걸음 한걸음이 사지로세.

옛날 사람 참선할 제 촌음을 아꼈거늘 

나는 어이 방일하며

옛날 사람 참선할 제

잠오는 것 성화하여 송곳으로 찔럿거늘 

나는 어이 방일하며

옛날 사람 참선할 제

하루 해가 다가면 다리 뻗고 울었거늘

나는 어이 이리 방일한고!

무명(無明) 업식(業識) 독한 술에

혼혼불각(昏昏不覺) 지내니

오호라! 슬프도다.

타일러도 아니 듣고 

꾸짖어도 조심하지 않으니 

심상하게 지나가니 혼미한 이 마음을 

어이하여 혼동할꼬?

쓸데없는 탐심(貪心)·진심(瞋心)을 공연히 일으키고

쓸데없는 허다한 분별이 날마다 분요(紛擾)하니

우습도다! 나의 지혜

누구를 한탄할꼬!

지각없는 저 나비가 불빛을 탐하여서

제 죽을 줄을 모르도다.

내 마음을 닦지 못하면 

여간한 계행(戒行)과 적은 복덕(福德)이 

도무지 허사로세!

오호라! 한심하다!

이 글을 자세히 보아 

하루 열두 때며 밤으로도 조금 자고

부지런히 공부하소!

이 노래를 깊이 믿어 

책상 위에 펴놓고서 

시시때때로 경책하소!

할 말을 다하려면 

바닷물로 먹물 삼아 글을 써도

다하지 못함이라!

이만 접고 끝내오니 

부디 깊이 아소!

할 말은 더 있으나

돌 장승이 아닌 다음에야

그때에 말하리라!